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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작가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안녕하세요, 저는 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정주원입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나 상황에서 출발하는 그림들을 동양화 재료와 백토라는 흙을 사용해서 그리고 있습니다. 

 

Q. 전시 제목을 《무덤과 둥지》로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덤’은 죽음을, ‘둥지’는 돌봄을 뜻한다는 점에서 상반되지만, 두 단어의 병치는 생과 사의 순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A. 이번 전시는 무덤이자 둥지인 풍경을 그려 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는 지난 5년간 4대가 함께하는 가족 형태로 살아왔어요. 지금은 상황이 변했지만, 꽤 오래 그런 생활을 했고, 저는 일종의 관찰자로서 유년기와 노년기의 삶, 그리고 그 둘을 모두 돌보는 중년의 삶을 관찰해 왔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단계들과 노화, 세대 간 돌봄 등을 생각하게 되었고, 경험했던 복합적인 감정에서 이번 작업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둥지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생명을 품어주는 ‘생’과 관련된 것, 무덤은 생의 끝을 아우르는 ‘사’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또한 들었어요. 제가 실제로 몇 년간 있었던 곳이 무덤과 둥지 근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번 작업들이 그 두 가지의 그림자가 겹쳐진 무언가라고 생각해서, 제목을 《무덤과 둥지》로 짓게 되었습니다. 

 

Q. 이번 전시의 작품은 〈담담한 무덤〉, 〈껍질, 얼굴, 주름〉, 〈서려는 것들〉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작업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나요?

 

A.〈담담한 무덤〉은 200호 5점을 붙여서 그린 대형 회화 작업입니다. 큰 나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에요. 그리고 이를 받치고 지지하고 있는 덩굴 같은 것들이 엉겨 있죠. 누워 있는 나무가 의인화된 인물처럼도 보이고, 전체적으로는 풍경으로 보였으면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인물화로 생각하고 접근했는데, 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풍경이나 추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껍질, 얼굴, 주름〉은 순지에 그린 작업인데요. 캔버스 작업보다는 가볍게, 드로잉처럼 접근했어요. 이전 전시에서 그림의 일부분을 확대하고, 패턴화시켜 벽지처럼 여러 장을 그려 벽에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설치한 적이 있는데요. 그 작업이 〈껍질, 얼굴, 주름〉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이번에는 같은 패턴을 반복해 그리기보다는 각각 다른 패턴을 만들어 냈어요. 나무껍질의 표면이나 신체 피부에서 보이는 주름이나 지문 등을 뒤섞어 흔적이나 자국들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원래 표면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서 층을 쌓는 방식으로 회화의 표면을 만들어 왔는데, 이 작업에서는 동양화의 필법처럼 물질적 두께가 아닌 선과 획으로 함축적인 표면을 만들고 싶었어요.  

 

〈서려는 것들〉은 연수목 지팡이를 이용한 설치 작업입니다. 이 작품을 구상할 때, 약한 서로서로 지탱해서 서 있는 약간 불안하고 위태로운 모습의 지지대를 상상했어요. 그러다가 신체를 보완하고 지탱해 주는 지팡이의 형태를 이용해 회화 작업의 지지대를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수목 지팡이는 벼락 맞은 감태나무로, 수명을 연장해 준다는 무속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지팡이를 만드시는 장인 분께 부탁하여 연수목 지팡이를 만들고, 제가 직접 그 위에 옻칠을 했어요. 혼자 서고 싶어 하지만, 서로 의지해서 서 있는 형태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Q.〈서려는 것들〉은 서로 기대어야만 위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곁을 내어 줄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은유하는 것 같아요. 각 지팡이들에는 5점의 회화 작업이 걸려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일까요? 제주와의 연관성도 짙다고 들었습니다.

 

A.〈서려는 것들〉의 지팡이 지지대 위의 회화 작업들은 일종의 ‘단상’ 같은 것들인데요. 한 작품 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생과 사에 대한 복합적 감정들이 담겨 있어요. 그중 한 가지 작업, 〈늙음 모색〉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언젠가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한 나이 든 손을 본 적이 있어요. 무언가를 가리려고 치장한 것이 오히려 주름진 손을 드러낸다는 점이 어딘가 아이러니해 보이더라고요. 젊음은 우리가 제대로 모색하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 버리니, 정말로 우리가 모색해야 하는 것은 잘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려 본 그림입니다. 

이번 개인전을 제주에서 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데요. 저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두 분 다 고향이 제주도예요.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향 땅을 꼭 밟고 싶다고 하셔서 2년 전쯤 두 분을 모시고 함께 여행을 갔어요. 할머니께서 할머니의 어머니(저의 증조할머니) 무덤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함께 갔다가, 무덤 앞에서 절을 하시면서 통곡하시는 모습도 봤고요. 그때 며칠을 같이 지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작업의 단초를 처음 떠올리고, 드로잉으로 기록해 두었어요. 실제로 작업이 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지만요. 공교롭게도 올해 이 작업을 제작하고 선보였던 《젊은 모색 2025》(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 전후로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셨어요. 그 후 두 분이 항상 그리워하던 고향, 제주에서 이 작업들을 다시 전시할 수 있다는 점이 제게는 뜻깊습니다. 마치 다시 모시고 제주에 여행을 가는 기분이에요.

 

Q. 그렇다면 〈담담한 무덤〉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나요? 〈서려는 것들〉보다 더욱 확장되는 서사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A.〈담담한 무덤〉은 전시 제목처럼 무덤이자 둥지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입니다. 전체 화면을 가로질러서 죽어가는 푸른 나무가 있고, 그 옆에 우후죽순 뒤덮인 덩굴이 그 죽은 나무를 받치고 있어요. 이 그림을 그리면서 그려지는 대상은 나무지만, 저에게는 일종의 인물화라고 생각했어요. 〈담담한 무덤〉을 그리기 전에 〈할아버지 나무〉라는 그림을 그렸었는데요. 〈담담한 무덤〉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젠가 오게 될 ‘할아버지 나무’의 죽음의 장면을 떠올리며 시작했어요. 〈할아버지 나무〉 작업에서처럼 나무에 모자를 씌우거나 지팡이를 쥐여주지는 않았지만, 제 세계관에서는 동일한 대상이었던 것이죠. 그렇지만 보는 사람이 이를 인물화로 읽지는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저 풍경처럼 보아도 되고, 추상처럼 보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는 거리와 읽는 사람에 따라 추상도 풍경도 인물도 될 수 있는 그림이에요. 

 

재미있게도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변천사가 많았어요. 처음에는 대체로 녹색, 갈색조의 그림이었는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 지우고 닦고 다시 그렸다가, 뚝 잘린 나무 동이가 보였다가 없어졌다가… 그림 하나를 그렸지만, 과정을 보면 전혀 다른 10개 넘는 그림을 그린 것 같아요. 아예 톤을 낮추어 내장이 쏟아지는 느낌을 내면서 죽음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적도 있고요. 결국에는 ‘색’이 주는 힘을 사용하고 싶었고, 신비롭게 죽은 느낌이 나는 하늘색, 파란 색조의 나무로 완성했어요. 

 

Q. 몽골에 살았던 적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지금 작가님의 작업 기반을 이루는 데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전시의 관객분들에게도 소개해 주세요.

 

A. 저는 농담 삼아 몽골이 제2의 고향이라 말하곤 해요. 이번 작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벌써 오래된 이야기지만, 1년간 그곳에 살았던 시간이 저와 제 작업에 분명한 영향을 준 건 사실이에요. 몽골에 가기 전, 저는 좀 지쳐있었어요. 이제 막 작업과 대학원과 레지던시를 시작하던 시점이었는데, 일종의 번아웃이 왔던 거죠.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자원봉사 활동으로 몽골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어요. 몽골에서 지내면서 막연한 조급함이 없어졌고,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게 되었고,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그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었거든요. 한국은 시간이 빨리 흘러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이에 시간들이 확확 지나가는 반면에, 몽골에서는 제가 시간 위에 올라탔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어요. 그때의 시간이 제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정서적 기반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Q. 회화를 다루는 삶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회화를 다룬다는 것은 회화 작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그만큼 지치는 질문인 것 같아요.

 

A. 단순하게 말하자면 저는 회화가 어려워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회화는 전통적인 매체이기도 하지만, 직관적이라고 할까요. 작가의 감정과 몸짓과 모든 것이 아주 솔직하게 화면과 연결되어 있어요. 솔직하기 때문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매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른손잡이인데, 그림은 저에게 왼손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편한 손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제게 가장 편한 것은 사실 명확하고 논리적인 것에 가까워요. 숫자나 또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들. 그렇거나 아니거나, 0이거나 1인 것들. 그림은 그런 면에서 매일 다르고, 항상 모르겠고 늘 어렵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괴리가 그림에 대한 흥미가 유지되는 큰 이유인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항상 있다는 점이 오히려 회화를 계속 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거죠. 

 

Q. 동양화를 기반으로 작업을 한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특히 백토에 물감을 결합한 표현이 독특하다고 볼 수 있어요. 재료에 관한 최근의 생각이 있다면 들려 주세요.

 

A. 저는 백토와 동양화 물감, 아교를 섞어서 물감을 만들어서 사용해요. 백토는 제가 학부 때부터 자연스럽게 써 온 재료인데요. 원래 전통적으로는 탱화나 불화의 밑작업으로 얇게 여러 번 발라서 사용하는 재료예요. 저도 처음에는 얇게 바른 백토에 동양화 물감을 얇게 흡수시키는 방식으로 쌓아서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은 백토를 밑작업이 아닌 물감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어요. 2021년쯤부터 지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리게 되었는데요. 물감의 물성을 강조하고, 붓질을 보여주는 소위 페인터럴리한 페인팅을 동양화 재료로 구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어요. 그때부터 백토를 밑작업이 아닌 물감의 일부로 인식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물감 건조 시간은 보통 2, 3시간으로 짧은 편이에요. 그렇지만 사용하는 재료들이 모두 수용성이고, 영구적 보존에 불리한 면이 있어요. 그래서 항상 작업과 더불어 재료적 실험과 물성 연구를 병행하는 편이에요. 누구나 사용하는 재료가 아니다 보니, 숙명적으로 시행착오를 겪고, 재료적 연구도 하며 사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기존의 방법에서 재료적 요소 하나 정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 보는 실험을 해보고 있어요. 동양화 물감을 수채화나 과슈 혹은 분채나 피그먼트로 대체하거나, 아교를 아라비아 고무액이나 수채화, 아크릴 미디엄으로 대체하는 식으로요.

 

Q. 3개월이 지나면 《무덤과 둥지》도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겠죠? 그 전에, 《무덤과 둥지》를 통해 스스로 발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무덤과 둥지》를 마치고 나면, 한 단락을 정리하는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작년과 올해, 2년간 평소의 템포보다 조금 길게 하나의 주제를 다루었어요. 돌봄과 의존, 그로 인해 발현되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을 서로 기대어 서있는 나무들의 모습으로 그려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언가(나무)를 그리는 작가로, 또 하나의 주제를 다루는 작가로 정의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약간 갖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정해지지 않은 채로, 여러 소재들을 넘나들고 싶은 마음 또한 여전히 있고요. 이제는 저를 둘러싼 개인적 상황들도 많이 바뀌었고, 《무덤과 둥지》를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잘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작업을 명확히 하나로 정의내리고 싶지 않은 마음과 언어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공존시켜 온 것 같아요. 작업의 주제나 그려지는 것들이 시시때때로 변하다 보니, 항상 변화하는 것 같아 보이는 내 작업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진짜’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와 분리되지 않고 내 삶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것에서 작업이 출발했지만, 그 대상은 항상 변해 왔어요. 결국에는 ‘나와 달라붙어 있으며, 움직이고 변화하는’ 두 가지 특성이 제 작업의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두 가지를 큰 축으로 《무덤과 둥지》 이후 다음 작업을 구상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