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lace
이미지는 오랫동안 벽 위에 놓여왔다. 혹은, 벽에서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동굴 벽화에서 프레스코, 그리고 근대 이후의 화이트큐브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이미지는 언제나 특정한 표면에 기대어 존재해왔다. 회화가 독립된 지지체를 갖게 되면서 이미지는 벽으로부터 분리되어 이동 가능한 대상이 되었지만, 그 기원으로서의 벽은 여전히 표면 위에 자리 잡는 다양한 작업의 조건으로 남아 있다.
《In Place》는 이 조건으로부터 출발한다. 마루토 아르디, 마이클 리키오 밍 히 호, 장다은, 송민지 — 네 작가는 각자 하나의 벽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 서로 다른 측면에 접근한다. 이 전시에서 벽은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작업을 규정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하나의 벽은 코너, 길이, 방향, 표면이라는 서로 다른 성질로 나뉘며, 작업은 그 조건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마이클 리키오 밍 히 호의 작업은 두 벽이 만나는 코너에서 시작된다. 시선이 정면으로 닿지 않는 이 위치는 말레비치의 〈Black Square〉(1915)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 코너는 회화를 절대적인 이미지로 선언하는 장소였지만, 그의 작업은 같은 위치를 점유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문장은 동시대에 만연한 냉소와 패배주의를 반영하면서도 낮은 톤으로 흘러가며 시선의 가장자리에 걸린다. 한편 비정형 캔버스 위에 펼쳐진 풍경은 특정한 장소나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시선을 끌어들이는 장치에 가깝다. 관람자는 이 풍경에 이끌려 접근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완전히 붙잡히지 않는 문장과 장면들이다. 코너의 텍스트와 캔버스의 이미지 사이에서 의미는 제시되기보다 유보된 상태로 머문다.
송민지는 그 길이를 조건으로 삼는다. 약 9미터에 이르는 중선농원의 벽은 작업의 조건으로 먼저 주어졌고,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작업실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두 벽을 가로지르고 바닥을 지나 이어지도록 천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안료를 흘려 만든 하나의 긴 화면은 이후 분절되고 재구성되며 전시 공간 안에 놓인다. 관람자 앞에 놓이는 것은 완성된 이미지가 아닌, 하나의 연속된 흐름이 잘린 단면이다. 물감이 스쳐 지나간 자리, 오래 머문 흔적, 거의 남지 않은 흔적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 작업은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지나간 사건들의 층위에 가깝다. 작업의 원형을 상상하는 일은 결국 관람자의 몫으로 남는다.
장다은은 벽이 가진 방향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하교〉(2026)에서 벽은 수직의 표면이 아니라 바닥처럼 인지되는 평면으로 다루어지고, 그 위에 남은 윤곽은 그림자의 자리다. 그림자는 대상·빛·위치·시간이 맞물릴 때에만 잠시 형성되었다가 사라지는 관계적 이미지다. 작가는 이 가장 취약한 이미지를 물질로 옮긴다. 파인 윤곽들은 부재를 결핍이 아닌 구조로 조직하며, 시간은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어긋나고 겹치며 분산된 상태로 드러난다.
마루토 아르디의 <Pegs and Chain>(2026)은 이 모든 것을 다시 표면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나사, 책, 체인은 벽 위에 직접 개입하며 반복적인 패턴과 구멍의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개입은 표면을 이미지로 덮는 대신 물리적 행위가 축적된 장으로 전환시키며, 벽을 수동적인 지지체가 아닌 능동적인 구조로 드러낸다. 반복적으로 배열된 나사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체인은 중력에 의해 늘어지면서도 기하학적 형태를 암시하며, 실제의 힘과 시각적 환영 사이의 긴장을 형성한다. 한편, 반쯤 열린 상태로 쌓인 책들이 기둥의 형태를 이루는 <Black Books are Portable Pillars>(2026)은 설치 방식에 따라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단위로 기능한다. 물리적 개입이 축적된 표면 위에서, 벽이 하나의 평면이라면 이 작업은 그 평면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고 세우는 시도다.
네 작가의 작업은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벽을 점유하고 변형한다. 그 과정은 끊임없는 이동과 조정, 반복을 포함하지만 결국 이 모든 움직임은 하나의 자리를 향해 수렴한다. 라틴어 ‘residere’가 움직임을 멈추고 앉는다는 뜻과 동시에 가라앉고 낮아지고 잦아드는 상태를 가리키듯, 어떤 자리에 놓인다는 것은 그 이전에 있었던 운동과 에너지를 전제한다. 이미지가 어디에 놓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 자리를 얻게 되는가. 《In Place》는 그 질문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