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UN: 진 마이어슨 Jin Meyerson

26 August - 25 September 2021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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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갤러리2와 부산 조현화랑(달맞이/해운대)은 진 마이어슨(Jin Meyerson)의 개인전 <RETURN>을 개최한다. 컴퓨터 그래픽 등 기계적인 방식을 통해 왜곡된 도시 풍경을 선보여 왔던 진 마이어슨은 2019년부터 리턴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영상 작품에서부터 설치, 회화, 증강 현실 체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 리턴프로젝트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존재와 그들이 속한 장소에 대한 성찰로 확장한다. 리턴프로젝트의 마지막 행보인 이번 개인전은 <THE IMPOTENCE OF FIRE>, <GENEALOGY>, <POST-CALIFORNIA> 등 변화된 회화 작업과 더불어 문래동 스페이스 XX에서 AR전시도 함께 진행된다.

 

2019년 4월 5일, 진 마이어슨은 일본 사도섬(佐渡島)을 여행하는 중에 리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는 이미 북한에서 출항한 소형 어선이 난파되어 사도섬 앞바다에 떠밀려 왔던 것을 신문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의도치 않은 곳에 정체된 어선과 선원의 이야기는 그에게 매우 특별했다. 그래서 친구가 사도섬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작가가 이 사도섬에서 촬영한 <NO DIRECTION HOME>은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입양아로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 작업에 임하는 태도를 읊조리는 영상 작품이다. 그리고 북한 어선의 잔해로 제작한 회화와 오브제 작품 <SEQUENCE 2>는 객관적인 전달이나 기록의 차원을 넘어 오롯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 사건의 이면을 보여준다.

 

진 마이어슨은 <SEQUENCE 2> 작품으로 이미 제주도 갤러리2 중선농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제주도 전시에 이어 서울 갤러리2와 부산 조현화랑(달맞이, 해운대)에서는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개인전 <RETURN>이 열린다. 그동안 작가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건축적 요소는 신작에서 그 혈통을 잇는다. 이번 신작은 기존 작품의 후손과 같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르지 않은 마치 조상과 우리의 관계처럼 말이다. 신작 <THE IMPOTENCE OF FIRE>는 이전 작품인 <SUNDIAL>, <FULL CIRCLE>, <INTERLOPER>의 건축 구조와 연결되지만, 중심을 이루는 부분의 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새롭게 구성했다. 족보처럼 이어지는 작업의 관계를 작가는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이것은 ‘시리즈’와 구별된다. 비슷한 요소의 변형이 아닌 마치 친족 사이에 공유하는 DNA 구조처럼 작품이 연결되어 있다.

 

건축은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그림의 요소이다. 2005년에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가우디에서부터 프랭크 게리까지 그들의 건축에 주목했던 그는 자신의 그림에 건축적 요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건축물이 작품에 등장하지만, 작가가 모든 장소와 건축물은 직접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점이 자신의 작업에 필수적이면서 효과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친숙하지 않기에 선입견도 없기 때문이다. 그림에 사용되는 건축물의 사진을 본인이 직접 찍지 않는 것 역시 작품과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건축물은 왜곡, 확장, 반전, 이질적 요소의 레이어링으로 원본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건축에 주목하기 전인 작업 초기부터 작가는 이질적인 요소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던 그는 1990년대 중반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친구를 통해 포토샵 프로그램을 배우게 된다. 당시 포토샵은 극소수의 전문적인 프로그램 제작자만 사용하던 툴이었다. 그는 포토샵의 왜곡 필터(Distortion filters)를 사용해서 다양한 설정값을 무작위로 조정함으로써 복잡하고 환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제작 과정을 보면 먼저 다양한 이미지를 수집한다. 그는 잡지, 서적에 삽입된 이미지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이미지도 함께 수집한다. 이미지를 선택한 후에 CG랜덤화(CG randomization) 기능과 함께 스캐너를 사용해서 스케치한다. 스캐너가 이미지를 스캔하는 동안 뒤집거나 움직여 이미지를 왜곡한다. 그 횟수가 50회를 초과할 때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다시 잘라내고 삭제하고 이미지를 겹쳐내는 등 재가공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최종 결과물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것만큼 오래 걸린다. 실제의 대상(혹은 이미지의 원본)은 존재하지만, 작가는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하는 것을 기계적인 방식을 통해 견제한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으로서 어디에서도 진정 소속되지 못한 그는 대상이나 주변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언제나 의심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기계적인 방식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학습되기 이전의 시각과 동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대상의 형태로부터 지속해서 미끄러지며 그 의미와 정의를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 마이어슨의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는 이미지가 캔버스에 고착되지 않고 가상 공간에서 부유한다는 것이다. 갤러리2와 조현화랑의 회화 전시와 더불어 문래동 스페이스XX 에서 AR(Augmented Reality, 증강 현실) 전시를 함께 진행하는데, 실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와 AR전시는 빛과 그림자, 존재와 부재 그리고 직접과 간접의 관계성을 따른다. <THE IMPOTENCE OF FIRE>에서 색이 배제된 부분이 AR전시를 통해 자신의 색과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그림을 구성했던 본래의 디지털 스케치를 캔버스가 아닌 가상 공간에서 존재하도록 재현한 것이다. 전시장에서 실물 작품과 AR전시를 동시에 체험할 때 비로소 작품의 완벽한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다.

 

진 마이어슨은 관람객에게 서울과 부산 그리고 AR전시를 모두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엔 어떤 구심점이나 출발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모두 시퀀스(Sequence: 연속적인 사건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우연이란 없다고 말한다. 그 대신 시퀀스가 있다는 것이다. 영상 작품 <NO DIRECTION HOME>에서 출발한 리턴 프로젝트는 영상, 설치 그리고 회화 등 장르의 경계와 더불어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 안에서 작가와 그의 작품은 스스로 진화하고 많은 장소를 거쳐 가면서 삶의 정점을 보여준다. 작가의 여러 시퀀스는 모든 인간이 겪는 상실과 우울 그리고 (자의적이든 혹은 타의적이든) 이동의 역사를 공유한다. 그러나 그는 전시의 진정한 메시지는 극복, 회복 그리고 치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