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ote control: 강석호, 김세일, 박광수, 잭슨홍, 한경우, 한계륜, 홍승혜, 황용진

29 January - 27 March 2021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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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ote (Control)

 

전시에서 ‘리모트(콘트롤)’은 직접 갈 수 없어서 멀리서 전시준비를 할 경우 발생하는 제약과 한계를 우회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제불능과 오류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유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전시는 의도한 대로 원하는 그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다고 믿는 이 장치의 이면을 드러내며 ‘지금 여기’에서 예기치 못 한 난관을 만나고 어려운 난제를 극복하고 가로막힌 출구를 뛰어 넘는 개입과 조정의 과정을 탐구한다. 이 과정은 결코 선형적이지 않으며 이탈과 경로변경으로 얽히고 섞인 독특한 지형도를 형성한다. <리모트(콘트롤)>은 현실 바깥의 이상향을 모색하는 장치가 아니다.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 개입하고 조정하는 과정, 비선형적이고 예외적이고 소박한 시도들인 것이다.

 

전시는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현대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 온 여덟 명의 작가를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황용진, 홍승혜, 한계륜, 한경우, 잭슨홍, 강석호, 박광수는 현실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입장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며 펜데믹 시대의 불안과 동요에 암시적으로 우회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이상향을 꿈꾸며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실을 뒤집고 경계를 부수고 장벽을 뛰어 넘으며 현실의 다르게 읽기를 제안한다. 현재와 과거를 가로지르며 의외의 만남을 주선하는 ​강석호​의 배꼽 회화(<무제>, 2021) 세 점은 20세기 태평양전쟁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을 연결하며 현실의 색다른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가로막힌 현실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위치를 묻는 박광수​의 색채 드로잉(<무제>, 2020) 세 점은 시공간에서 분열하고 변이되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작업이다. 이는 색이 흘러내리고 섞이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감각되는 인간의 외면 그 속에 가려진 정체성 그리고 그 경계를 인지하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마음의 풍경을 탐구해 온 ​황용진​은 ‘나의 랜드스케이프' 시리즈 중 미공개 작품인  <ML17213, 2017>를 제안한다. 황혼을 배경으로 가운데 우뚝 선 한 그루의 나무는 시간들이 겹쳐지면서 수 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뒤섞여 있는 우리 내면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한계륜​의 <노랑의 착륙, 2021>은 작가가 오래 전부터 지속해 온 ‘에리스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튜브 조형물로 구현된 <노랑의 착륙>은 우주선 스테들러 호가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왜행성 푸른별 에리스에 멋지게 착륙하는 장면을 재현한다. 스테들러라는 연필 브랜드와 왜행성 에리스의 엉뚱한 만남은 현재와 미래를 횡단하며 재현과 현실의 문제를 재치있게 우회한다. ​잭슨홍​의 <플런저 Plunger, 2010>는 피스톤 운동을 하며 유체를 압축하는 기계를 만화적 이미지로 재가공한 입체작업이다. 작가는 순백 플라스틱 플런저가 전시장으로 날아 들어와 벽면에 꽂힐 때 미세한 진동까지 느껴지도록 섬세하면서도 만화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한편 ​한경우​의 <Reversed relation, 2019>는 원본과 사본의 모순적 관계를 보여준다. <Reversed relation>은 자연의 돌이 인공홀드 모양으로 재현된 작품으로 작가는 인공암벽등반에 사용되는 인공홀드가 자연의 돌을 모방한 물건이라는 점에 착안하며 원본과 사본, 독창성과 모방에 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색다른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김세일​의 <X25, 2020>은 되돌릴 수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조각을 뒤집어 생각하며 풀어 나간다. 작고 하얀 석고조각 <X25>는 흙으로 만든 두툼한 판 위에 인체를 그린 후 내부를 거꾸로 파내고 거기에 석고를 붓고 굳은 다음 흙을 걷어내면서 손에 잡히는 자그마한 ‘덩어리(mass)’, 우연과 오류에서 탄생한 존재지만 늘 작가 곁에 떠돌던 ‘그 무엇 X’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고 여린 석고조각에서 작가는 X-ray에 우연히 찍힌 그의 압류된 욕망을 본다. ​홍승혜​의 <Box, 2020>는 포토샵 저해상도 그리드 위에서 상상 가능한 부피의 이미지를 ‘픽셀 추상'으로 표현한 작업으로 이는 백지/무에서 싹이 트고 성장하는 과정을 닮아있다. 이 성장과정은 유기적이며 예측불가능성을 내재한 우리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